카테고리 없음

[추천도서] 《첫 여름, 완주》 리뷰 – 상처를 안은 채 살아낸 여름의 기록

storyteller123 2025. 6. 28. 09:04

📘 작품 정보

  • 제목 : 첫 여름, 완주
  • 지은이 : 김금희
  • 장르 : 장편소설 / 한국문학
  • 출간일 : 2025년 5월

📝 한줄평

고요하게 흘러가는 여름, 그 속에서 마주한 기억과 감정의 물결.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쓴 한 사람의 ‘완주’를 바라보는 따뜻하고도 단단한 시선.


🌿 여름, 관계, 회복 – 김금희가 건네는 가장 조용한 위로

『첫 여름, 완주』는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통과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이야기다. 말보다 침묵이 많고, 행동보다 시선이 중요하며, 설명보다 감정이 흐르는 소설. 주인공 ‘영주’는 어느 날,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서울을 떠나 완주라는 도시로 향한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이별 때문일 수도, 고된 일상 때문일 수도,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상실감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이유가 아니라, 영주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겪어내느냐는 점이다.

완주에서 그녀는 과거의 친구 ‘수진’을 다시 만나고, 오래된 기억과 감정을 다시 꺼내보게 된다. 그렇게 여름이라는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시간을 더듬는다. 때로는 마주하고, 때로는 외면하며, 그 여름을 살아낸다.

김금희 특유의 문장은 조용하지만 묵직하다. 큰 사건 없이 흘러가는 서사지만, 그 안에는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이 숨어 있다. 그 정서의 농도는 조용히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 1. 기억은 관계를 낡게 만들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영주와 수진은 오래된 사이지만, 그 기억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친구였고, 동지였으며, 어쩌면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존재들. 하지만 세월이 흘렀고, 각자의 상처도 깊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다. 『첫 여름, 완주』는 그런 관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오해와 거리가 있었지만, 말없이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다시 가까워지는 두 사람. 그 관계는 회복이라기보다, ‘다시 받아들이는 것’에 가깝다.

김금희는 여기서도 특별한 갈등 장치를 쓰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의 행동, 눈빛, 말투를 따라가며 관계의 균열과 복원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아프며, 동시에 더 진실하다.


💧 2. 정리되지 않는 감정에도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영주는 슬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외롭다고도, 힘들다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책상에 오래 앉아 있고, 과일을 썰다 멈추며, 누군가의 말에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김금희는 인간의 감정이 항상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첫 여름, 완주』 속 감정들은 복잡하고, 느리며, 때로는 어지럽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 채, 서서히 그 의미를 드러내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 3. 끝내 도착하지 않아도, 우리는 ‘완주’한다

소설의 제목 ‘완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명으로서의 완주이기도 하지만, 어떤 시기나 감정을 '끝까지 지나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이다.

영주는 완주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극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여름을 살아낸다. 숨 막히는 더위와 껄끄러운 관계, 어쩌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감정들까지 모두 끌어안고, 다시 일어선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작은 변화지만, 독자는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이처럼 『첫 여름, 완주』는 인생의 특정 시기와 감정을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그려낸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여름을 그렇게 완주해왔고, 또 앞으로도 완주해 나갈 것이다.


✅ 총평

『첫 여름, 완주』는 설명하지 않아서 더 깊은 이야기다. 감정을 조용히 풀어놓고, 독자가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큰 사건도, 빠른 전개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감정의 진실성이 있다. 김금희의 세계는 그렇게, 한 여름을 완주하는 한 사람을 통해 우리 모두의 기억을 건드린다. 이 책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무를 여름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첫여름완주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도서